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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일어나.”
한창 달콤한 잠에 빠져있는데 돌연 옆에서 느껴지는 말소리에 기겁하며 사보는 일어났다. 그런 사보를 보고 쯧쯧, 혀를 차더니 에이스는 벽에 걸려 있는 제복을 사보 앞으로 던지며 10초 줄 테니 갈아입어라, 라고 말했다.
“도대체...무슨........몇 시...?”
“몇 시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근처에서 로봇병사의 소리를 들었다는 놈이 있어.”
“어...?”
“정찰가야지. 10초 끝났는데 언제 일어날래?”
이제야 어둠속에 익숙해진 사보의 눈에 완벽하게 옷을 차려입고 벽에 팔짱을 끼고 기대어 있는 에이스가 보였다. 사보는 잠을 떨쳐내려 고개를 세차게 젓고는 얼른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사보가 신발을 신는 걸 보는 에이스는 정문 앞으로 나와라, 하고 방문을 나섰고 사보는 벽에 기대어둔 쇠파이프를 들고 허겁지겁 에이스의 뒤를 따랐다.
정문에는 에이스와 로스, 그리고 야간 순찰병이 몇몇 모여 있었다. 로스는 에이스의 파트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시간에 깨웠다며 사과했다. 에이스는 순찰병에게서 어느 쪽에서 소리를 들었는지 듣고 있었고 몇몇의 순찰병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로스의 사과를 멍하니 듣는 사보의 뒷덜미를 잡고 기지 밖으로 향했다.
“근데 정찰인데 왜 네가 가는 거야?”
사보의 질문에 에이스는 별 질문 다한다,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무미건조하게 내뱉었다.
“그럼 내가가지 누가 가냐. 여기서 그놈을 가장 빠르게 죽이는 게 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른 사람하고는 왜 안가?”
“넌 다른 사람 아니면 뭔데.”
에이스는 사보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고 사보는 그런 게 아니라, 하며 에이스를 뒤쫓았다. 원래 혼자 하는데 네가 파트너라 같이 가는 거야라고 툭 내뱉은 에이스는 이제 조용히 하라며 검지를 입술에 댔다. 덩달아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은 사보를 보며 에이스는 한숨 쉬었고 조용히 앞으로, 앞으로 향해 걸어갔다.
한참 그렇게 걸어가던 에이스는 어느 곳에서 우뚝 멈춰서더니 사보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이스는 쇠파이프를 가리켰고 사보는 얼른 에이스의 손에 파이프를 쥐어줬다. 파이프를 건네받은 에이스는 그걸 높이 치켜들더니 곧 순식간에 눈 속에 파묻힌 무언가를 정확히 내리쳤고 그것은 치지직,하는 소리를 내며 두 동강났다.
에이스의 어깨 너머로 두 동강이 난 것의 정체를 살펴보니 저번의 전투에서 보았던 그 로봇병사란 걸 사보는 눈치 채곤 숨을 들이켰다.
에이스는 다시 손을 올려 그것을 부수고, 부수고, 또 부쉈다. 한참 뒤 다시 사보에게 파이프를 건네준 에이스는 그 자리에 서서 부서진 것을 살펴보더니 이상 없다며 돌아가자 했다. 사보가 방금 뭐한 거냐고 물으려 입을 뗀 순간 먼저 에이스가 입을 열었다.
“켈렉의 로봇 병사들한텐 어딘가에 각자 칩이 있어.”
“칩?”
“그래. 그 칩을 부수지 않는 이상 팔이 뜯겨져도 다리가 부러져도 계속 움직일 수 있지. 그러니 싸울 때 조심해야해. 아니면 저렇게 칩이 있는 남은 고철덩어리가 우리 기지까지 오니까말야.”
에이스는 그 이후론 입을 다물었고 사보는 뒤돌아 안의 부품들이 다 망가져 파지직,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쳐다봤다. 과연 내가 저것들과 싸울 수 있을까,하며 두려운 반면에 앞서 걸어가는 에이스가 새삼 대단했고 그런 에이스와 파트너가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이 되었을 때 둘은 기지에 도착했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자려는 사보의 팔을 잡고 에이스는 식당으로 향했다.
“어디가려고. 밥 먹고 훈련해야지.”
“밥 말고 잠은 안 될까...”
“안 돼.”
에이스에게 붙잡혀 식당으로 들어가니 약간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몇 없었다. 식판에 밥을 받고 천천히 입 속으로 넣고 있는데 누군가가 큰소리로 에이스의 이름을 부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에이스는 작게 혀를 차더니 곧 방금과는 다른 속도로 밥을 마시듯 들이킨 뒤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스, 벌써 가?”
“루피. 넌 왜 이 시간까지 여기 있는 건데?”
“볼 일 좀 보려고. 근데 에이스, 에이스!!! 아침에 정찰 갔다 왔다며? 괜찮아?”
“그래. 걱정 마.”
에이스는 루피의 머리를 한번 휘젓듯 쓰다듬더니 몸을 낮춰 사보에게 항상 오던 훈련장으로 오라며 속삭이듯 얘기하고 식당을 나갔다. 루피는 싱글싱글 웃으며 에이스의 뒷모습에 대고 손을 흔들다 에이스가 사라지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루피의 한숨소리에 사보는 밥을 먹다말고 고개를 들어 무슨 일이냐 물었고 루피는 맥없이 말을 내뱉었다.
“에이스가 걱정돼서.....”
“걱정돼? 어째서?”
“나한테는 아무런 말도 안하고 저렇게 혼자 다 떠맡잖아. 할 수만 있으면 내가 에이스의 파트너가 되고 싶었는데.......그러니까 사보,”
루피는 사보의 손을 꽉 잡았다. 에이스를 잘 부탁해, 라고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하게 말하는 루피의 말에 사보는 덩달아 진지해져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다시 웃어 보인 루피는 그럼 훈련 잘 받으라며 유유히 식당을 빠져나갔다. 사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 마저 식사를 끝내고 훈련장으로 올라갔다.
사보는 훈련장의 바닥에 누워 두 눈을 꽉 감고 있었다. 일어났다간 여러 의미로 죽을 것 같았다. 그런 사보의 곁으로 에이스가 다가와 두 손가락으로 감겨있는 사보의 눈을 억지로 벌렸다.
“투정부리지 말고.”
“투정으로 보여 이게? 너랑 훈련 두 번 했다간 난 죽을 거야.”
에이스는 피식 웃더니 그래도 너, 발전하는 게 눈에 보여서 좋다고. 라고 하더니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들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겨우 일어난 사보가 이제까지 맨손으로 훈련을 도와주다 갑자기 총을 꺼내는 에이스에 의문을 가졌다. 에이스는 곧 사보의 옆쪽으로 총구를 조절하더니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 안쪽에서 무언가 튀어나오고 화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보의 옆에 불이 붙었다.
“난 불을 사용해. 네가 싸울 일은 별로 없겠지만 혹시나 파트너로써 내 근처에 있다가 내 불에 의해서 죽는 꼴은 매우 웃기겠지?”
사보는 옆에서 피어오르는 불을 보더니 곧 들고 있는 파이프를 크게 휘둘러 바람으로 불을 껐다. 그런 사보에 에이스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고 사보는 에이스의 앞으로 가 자신의 눈 쪽 흉터를 가리켰다.
“이거, 화상 때문에 입은 상처거든. 근데 오히려 화재가 일어난 날 불이 너무 컸는지 트라우마는커녕 불은 전혀 무섭지 않게 됐지 뭐야.”
“허....”
“어때, 이정도면 네 파트너로 손색없겠어?”
사보의 말에 에이스는 풋, 하고 웃더니 그래, 네가 이겼다. 오늘 훈련은 끝이야! 라 외치며 밖으로 나갔고 사보는 자리에 주저앉으며 하하 웃었다.
그 후로 에이스는 본격적으로 사보의 훈련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공동 훈련장으로 나가 에이스가 보는 앞에서 움직이는 모형 로봇들을 상대로 싸우기도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 로봇의 머리를 날려버리고 뒤를 돌아보자 에이스가 잘했다며 박수를 쳤다. 그러자 훈련장안의 사보를 구경하던 사람들도 서로 눈치를 보더니 마지못해 박수를 쳤다.
에이스는 사보에게 따라오라고 말하곤 훈련장 밖으로 나갔고 땀을 닦으며 에이스의 뒤를 쫓던 사보는 밖으로 나가기 전 뒤를 돌아봤다. 모두가 부러움과 시기가 한껏 섞인 눈빛으로 사보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보는 남들이 모르는 에이스를 알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마 약간은 우월감에 가득 찼었는지도 모르겠다.
“아, 에이스. 전부터 궁금했는데 루피가 네 동생 맞아?”
에이스는 사보의 자세를 고쳐잡아주다 잠시 멈칫했다. 그리곤 네가 알거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본 후 아무 말 없이 다시 사보의 자세를 고쳤다.
“대답 안 해줄거야??”
사보는 입을 비죽 내밀었고 에이스는 역시 아무 말 없이 사보의 자세를 고쳐준 뒤 사보가 제대로 자세를 잡자 휙 뒤돌았다. 저번에 네가 답할 수 있는 데까진 그래도 가르쳐준댔잖아, 라고 뒤에서 툴툴 거리는 사보의 말에 에이스가 결국은 우뚝 멈춰 섰다.
“훈련과 싸움에 관해서만이지 내 사생활을 캐물으란 적 없어.”
“그래도 말야, 루피는 널 걱정하는 것 같.........헉.”
에이스는 눈 깜짝할 새 사보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놀란 사보가 짧게 숨을 들이키자 에이스는 영혼 없는 눈으로 사보를 바라봤다.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 라며 낮게 으르렁 거리듯 말을 내뱉은 에이스는 그대로 훈련장을 떠났다. 사보는 저번에 자신이 한 생각이, 자신은 에이스에게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라는 그 생각이 자신의 희망사항이란 걸 깨달았다.
오지 않는 잠에 계속해서 뒤척이던 사보는 결국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오늘 낮에 들었던 에이스의 말과 혼자 한 설레발이 겹쳐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지금 찾아가서 주제넘었다고 사과하면 실례겠지.
사보는 옆 벽면의 시계를 바라보며 생각하다 결국은 산책이라도 하자며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갔다.
“이크...”
공동 휴게실은 아직 잠들지 않은 몇몇이 앉아있어 사보는 들키지 않게 몸을 돌려 E급들만이 쓰는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사람은커녕 불까지 꺼져있어 삭막해 보이는 곳에 사보는 불을 키고 의자 구석에 놓여있는 담요를 끌었다.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도 없는. 온전히 사보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사보는 소파에 기대 창문을 통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에이스는 도대체 뭘 숨기는 걸까.”
“알고 싶나.”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보는 화들짝 일어났다. 인기척도 안 들렸는데...!!
고개를 돌리고 쳐다본 곳에는 그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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