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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로우. 로우 맞지?”
“그래. 네가 여기 있는 건 처음 보는군.”
사보는 잠이 안와서 라고 답하며 멋쩍게 웃었다. 로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쪽 편에서 커피를 타오더니 사보 앞으로 내밀곤 자신도 커피를 들이켰다. 사보가 어떻게 로우가 E급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에 들어와 있는지 생각하자마자 로우는 생각이라도 읽은 듯 손에 들린 열쇠뭉치들을 들어 올렸다. 사보는 카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맞부딪히는 열쇠들을 보며 그저 허허 웃을 뿐이었다.
“그래서, 에이스에게 무슨 말을 했기에 여기서 궁상떨고 있는 거지.”
“윽....”
로우 말의 반박하고 싶었지만 결국 자신이 잘한 건 하나 없다는 사실에 사보는 말을 삼켰다. 그리고 로우가 건네준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한숨 쉬었다. 로우는 그런 사보를 바라보기만 할 뿐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로우랑 에이스는 친해보였지. 사보는 처음 로우를 만난 날에 에이스가 로우를 끌고 갔던 걸 생각해냈다. 로우도 M인 것 같고…….
“로우는 에이스랑 친하지....?”
“친하긴 보단 다른 녀석들보다 그 녀석을 조금 더 많이 알긴하지.”
“친한 게 아냐?”
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녀석은 친한 녀석이라곤 곁에 두지 않는다.”
“어....그럼 루피는?”
“그래서 루피를 떼놓고 다니는 거 아니겠나.”
에이스가 루피를 피하는 것 같은 건 역시 착각이 아니었구나. 사보는 루피의 말이 생각나 고개를 떨궜다. 혼자 다 떠맡는다라. 커피 잔 속에 일렁이는 커피의 색이 마치 에이스의 머리색을 연상케 했다.
조금이나마 그랑 가까워졌다고 생각한건 내 착각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고립시키는 걸까.
“너는.”
조용한 휴게실 안에 로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보가 고개를 들어 로우를 쳐다보자 로우는 들고 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사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에이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로우는 아까보다 한껏 진지해진 얼굴로 사보에게 물어왔다.
“어떻게라니....”
“말 그대로다. 그저 그가 네 목숨을 구해줬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가 M의 대장이기때문인가.”
“그야.....나는........내가......”
사보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내가 에이스에게 신경을 쓰는 이유가 뭐지? 굳이 위험한 전투지역까지 가면서 그 옆에 있으려는 이유가 뭐지? 내가 그에게 신경 쓰는 이유가 뭐지? 나는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
“어이, 들어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의문에 사보가 머리 아파하고 있을 때 로우가 사보 앞으로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튕겨 소리를 내 자신에게로 집중하게 만들었다. 로우는 의문에 가득찬 사보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너에게 달렸다. 들은건가?”
사보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로우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로우가 카네에 들어왔을 땐 꽤나 동기들이 많았었다. 스카웃 해오는 것과는 다르게 직접 지원한거였기 때문에 특히 더 그랬다. 하지만 그 많은 동기들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에이스와 루피였다. 분명 이 틈바구니에 섞여있다는건 스스로 카네에 지원한 자일뿐일 텐데 마치 스카웃당한것 같은 꼴에 로우는 어림짐작했다. 윗놈들이 귀찮아서 그냥 대충 이쪽으로 집어넣은거구나,하며.
로우는 에이스가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극진히 아끼는 별 볼일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S의 무리에서 만나기 전까진.
“뭘 봐?”
에이스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건방지고 동생밖에 모르며 전쟁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는. 그런 기만 쎈 녀석. 하지만 곧 에이스와 함께 S에 배정되어 있던 루피의 친화력으로 로우는 어느새 에이스와 루피와 같이 지내게 되었다.
“이번전투 배정받은 거 봤냐? 왜 파트너끼리 안가고 M하고 S따로 나눠서 간다는 거지?”
“아까 작전 설명해줄 때 안 듣고 뭐했나.”
로우는 혀를 차며 아까의 작전을 설명했다. 켈렉에서 새로운 병기가 개발됐다는 정보가 들어와 정찰을 나가는데 그 정찰의 임무를 S가 맡게 됐다는 것이었다. S가 정찰을 끝내고 오면 M이 한 번에 그 새로운 병기를 부숴버리는, 그런 작전이었다.
“뭐야. 그러다가 우리가 실수해서 들키기라도 하면?”
로우는 볼멘 어린 에이스의 말에 어깨만 으쓱해보였다.
그리고 작전 시행 날.
4인 1조가 되어 각각 다른 방향으로 정찰을 한참 해나가는 도중 어디선가 큰 폭발음이 들렸다. 무전기로 들려오는 들켰다, 라는 비명에 같은 팀이던 에이스와 루피, 로우, 그리고 드케는 전투현장으로 뛰어갔다. 그곳엔 이미 같이 정찰을 나갔던 동기들의 시체가 즐비해 있었고 전투하는 사람들 역시 전투 현장과 가까이 있던 S들뿐이었다.
“젠장!!!! 언제 오는 거야 이놈들!!!”
“동서쪽에 지금 오고 있대. 3분 소요예상!”
에이스는 이상한 액체를 뿜어대는 로봇을 피하면서 뒤로 돌아가 들고 있던 쇠파이프로 머리를 갈겼다.
3분이라니. 로우는 입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금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3분이라고?! 도대체 우리가 정찰하고 있을 때 M 이놈들은 뭘 한거야??
“드케!!!! 이 개새끼들이...!!”
잠시 한눈 판 사이 M과 연락하던 드케가 로봇의 팔에 날아갔다. 에이스는 드케를 가격한 로봇의 팔을 파이프로 내리쳐 부숴버렸고 루피는 얼른 드케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드케는 급소를 맞았는지 끄윽 거리던 소리를 내다가 그대로 죽었다. 루피는 눈앞에서 숨이 끊어지는 걸 본 동료의 죽음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그 사이 로봇이 다가와 루피의 복부를 세게 가격했다. 루피는 그대로 날아가 땅에 쓰러졌고 그런 루피의 이름을 소리치며 에이스가 어느새 루피의 앞에 버티고 섰다.
이미 주위는 강한 로봇의 공격에 버티지 못한 동기들이 하나 둘씩 쓰러져 숨을 거뒀고 그 짧은, 5분도 채 안되는 시간에 생존자는 에이스, 로우, 루피. 딱 세 명이었다.
로우가 방심해 등을 맞아 쓰러졌을 때 드디어 M이 도착했고 각자 자신의 파트너가 죽어있는걸 본 M들은 맹렬히 로봇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잠시나마는 이쪽이 우세한 것 같았다.
하지만 신병기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싸운다는 건 이쪽에 있어 매우 불리했고 결국은 후퇴하기로 결정한 M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사용해 하나, 둘 전쟁을 빠져나갔다.
“에이스! 가야해!!!”
에이스의 파트너인 라이즈가 소리쳤고 에이스가 뒤로 돌아 도망치려할때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다친 루피를 부축하던 루피의 파트너가 공격을 받아 그대로 루피를 놓쳐 둘 다 땅에 쓰러져 있었다.
에이스는 앞 뒤 생각할거 없이 바로 다시 루피 쪽으로 뛰어갔고 다시 공격하려는 로봇의 공격을 쳐냈다. 다친 루피의 파트너, 베유는 끙끙거리다 일어나더니 그대로 몸을 끌고 도망치려했다.
“잠깐! 베유, 루피를!!!!”
아까 베유가 받은 공격이 루피에게도 영향이 갔었는지 루피는 일어설 힘도 잃은 채 쿨럭 거리며 약하게 피를 토해냈다.
홀로 도망치려하는 베유에게 에이스가 소리쳤지만 베유는 그저 뒤돌아 미안하다고 한 뒤 에이스의 파트너, 라이즈의 부축을 받으며 그대로 전쟁터를 빠져나갔다.
전쟁터엔 다친 루피와 에이스. 이 둘 뿐이었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에이스가 처절하게 소리치며 루피에게 다가가는 로봇을 발로 차 날렸다. 눈으로 흘러들어오는 피를 소맷자락으로 거칠게 닦고는 에이스는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많이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숫자는 전혀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켈렉의 신 로봇병사들은 파란 눈을 반짝이며 루피와 에이스에게 더욱 다가갔다.
에이스는 자신의 발밑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루피를 쳐다봤다. 이대로 더 늦어지다간 루피가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도 부상당한 이 상태에서 이 로봇들을 뿌리치고 루피를 업은 채 도망치다간 개죽음 당할게 뻔했다.
“하하...그럼 답은 하나잖아.”
에이스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아까 로봇에게 맞은 갈비뼈가 금이 간 건지 욱신욱신 거렸다.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에이스의 눈을 지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에이스의 눈이 일순간 새빨갛게 빛났다.
치직...치지직...........
“씨발!!! 니들이 그러고도 파트너라고??!?!! 동료라고?!?!! 지랄하지마!!!!!!”
로우는 거칠게 욕을 하며 통신기를 집어던졌다. 베유와 라이즈는 그저 입을 꾹 다물었다.
“니들이 늦게 오는 바람에 내 동기들은 전멸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적의 영역에 들어가 있을 때 너희들은 도대체 뭘 했나!!! 그래놓고, 살아있는 동료를, 살아있는 자신의 파트너를 거기다 두고왔다고? 참 잘나신 목숨들이군 그래!!!!”
로우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후퇴명령이 떨어졌을 때 바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다쳤어도 에이스와 루피가 제대로 후퇴를, 탈출을 하는지 지켜봤었어야 했다. 설마 M이, 파트너를 두고, 그것도 그저 S인 둘을 전쟁터에 남겨둘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 죽었겠지. 살아남을 수 없었다. M도 당해내지 못한 그 로봇병사를, 특수한 능력 따위 갖고 있지도 않은 에이스나 루피가 처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둘 다 다친 상태였으니 도망올수도 없었겠지.
로우는 절망했다. 불과 하루 전, 아니 몇 시간 전만해도 다 같이 모여 웃던 동료들이었는데 이제는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
우당탕탕!!!
방안에 적막만이 감돌 때 누군가가 안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급하게 들어왔고 들어온 사람은 말도 잇지 못하고 밖을 가리켰다. 설마, 하며 로우는 벙쪄있는 모두를 제치고 밖으로 뛰쳐나갔고 어둠 속 저 멀리서 누군가가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조금씩, 조금씩 다가와 기지의 불빛이 닿는 곳으로 와 모습을 밝혔을 때, 로우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기지 밖으로 뛰쳐나갔다.
“에이스!!!!!!”
“헉.........허억......로...로우....루...루피가..........”
에이스는 거의 끌다시피 데려온 루피를 로우에게 건네곤 그대로 쓰러졌다. 로우는 뒤돌아 당장 의사를 불러오라 말했고 곧바로 에이스와 루피는 수술에 들어갔다.
에이스와 루피의 상처는 심각했다. 루피는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초반에 다친 상처를 빨리 치료하지 못해 혈액 부족으로 조금 더 늦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루피는 상처를 치료하고 수혈 받는 것으로 치료가 마무리 됐지만 더 큰 문제는 에이스였다.
머리 쪽을 크게 몇 번 맞았는지 뇌출혈도 조금 있었으며 이마에 크게 찢어진 상처에서 나오는 피가 한쪽 눈으로 계속 들어가 실명위기가 왔으며 갈비뼈는 금 가 있고 다리 역시 한쪽이 부러져있었다. 몇 시간에 걸친 대수술이 끝난 뒤 에이스는 겨우 수술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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