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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사보에이

[사보에이] 마지막 약속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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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에는 여러 가지 소문이 나돌지만 그 중 단연 사보를 단숨에 휘어잡은 건 바로 오래 전부터 떠돌던 그 소문이었다.



“있잖아, 사보. 그거 알아?”
“...?”

사보는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코알라를 쳐다봤다.

“예전에 떠돌던 소문 중에 신세계의 어느 이름없는 섬의 특이한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열매라고.”
“...아아, 그런 소문이 한때 돌았었지.”

사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났다는 듯 말했다.

“근데 그게 아니래.”
“흠?”
“그 열매는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의 과거를 볼 수 있다나 봐.”
“무슨 말도 안 되는...”

사보는 잠시 움찔했지만 곧 피식 웃으며 코알라를 지나쳤다. 코알라가 뒤쪽에서 더 듣지 않을 거냐고 소리쳤지만 사보는 성큼성큼 걸어 흘러내리는 땀을 씻으러 방으로 들어갔다.



사보는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들여다봤다.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풀어 위로 올려 살짝 힘을 주니 어느새 손의 형체는 사라져있고 그 자리엔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 존재했다. 또 다시 마음 한구석의 찌르는 듯 아파왔고 그 아픔은 순식간에 사보를 덮쳤다. 숨 쉬기 힘들어지는 느낌에 사보는 급히 불꽃을 없애고 빠른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어젖혔다.

“꺄악!!! 뭐야!!!!!”
“코알라, 낮에 한 얘기 좀 더 해봐.”
“사보!!! 숙녀 방에 이렇게 막 들어오기야?!?!!!”
“얼른.”

사보는 문에 기대 아무런 표정 없이 코알라를 바라보며 재촉했고 코알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깊게 한숨 쉬곤 입을 열었다.



**
“그럼 남은 섬이 이제 없는데...”

사보는 머리를 싸매고 지도에 엑스자를 치다 곧 포기하는 듯 의자에 길게 늘어졌다.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의 과거의 모습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데 조건이 하나 붙어. 그 사람이 잠시나마라도 섬에 머물렀어야 한다는 거야.]

코알라의 말에 의하면 내가 원하는 사람이 섬에 오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은 다 쓸모 없는 거라는 거겠지. 사보는 다시 한 번 길게 한숨 쉬었다. 그러다 결국 안되겠는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바람이라도 쐴 겸 밖으로 나갔고 주위를 둘러보던 사보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 열매를 작년에 어떤 학자가 먹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열매가 어떠한 작용을 일으키는지 알았고. 아, 그리고 그 섬의 위치까지 대략 알 수 있어. 뭐 그 섬은 바로 느낌이 온다나 뭐라나 했지만.]

코알라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사보의 눈 앞엔 아주 작은 섬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 섬의 꼭대기엔 주위 나무 하나 없이 자신의 존재를 뽐내고 있는 나무도 보였다. 분홍색으로 온 몸을 덮고선.

“저기구나...”

사보는 멍하니 섬을 바라보다 기록지침을 확인했고 확실히 기록지침이 그 섬을 가리키지 않은 걸 보곤 황급히 정박준비를 하려 조종 키를 향해 뛰어갔다.



섬은 아주 작았고 살아있는 생물체는 눈에 띄질 않았다. 가끔 새들이 멀리서 날아와 잠시 휴식을 하러 지나치는 정도였다.
확신할 수 없었다. 네가 이 섬에 왔는지 안 왔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너는 워낙 모험하는 걸 좋아했으니 이런 섬에도 호기심에 들렸길하고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 나무의 열매란 말이지...”

사보는 나무에 도착해 위를 올려다봤다. 강렬한 색이 사보의 시야를 어지럽혔지만 곧 정신을 바짝 차리곤 어린 시절처럼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이건가...!!”

한참을 나무 위에서 돌아다니다 거의 끝 쪽에 나 있는,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질 건 같은 단 한 개의 열매를 찾은 사보는 조심이 열매를 떼어내고는 가뿐히 땅으로 내려왔다.
사보는 열매를 먹지 못하고 그저 나무에 기대 바다를 내려다보며 열매를 한참을 손에서 굴렸다. 이걸 먹는다 해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다. 만약 정말 운이 좋아 너를 만난다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이 에이스를 만날 자격이 있는지도 몰랐다.
사보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무언가에 조이는 듯 갑갑했다. 손안에 들린 열매를 바라보는데 순간 위에서 분홍색의 잎이 팔랑 이며 사보의 손 안에 내려왔다. 사보가 고개를 올리자 바람도 불지 않고 있는데 나뭇잎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평생 만날 수 없는 것보다야...”

사보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벌려 열매를 입 안으로 넣었다.




“....”

언제 잠들었던 건지 사보는 눈을 느리게 떴다. 이미 해는 수평선을 넘어 세상은 어둠에 잠겼있었지만 자신이 등을 기대고 있는 나무만이 어둠 속에서 자신의 빛을 빛내고 있었다. 눈동자만을 굴려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주위에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하...역시나....”

사보는 실소를 내뿜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래 자신 같은 사람에게 그런 기적이 찾아올 리 없었다. 한 편으로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기에 올라오는 쓰라림에 눈을 감고 겨우 쓰림을 삼키고 있는데.

“어라...?”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낯선 목소리였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릴 적의 항상 듣던, 질리도록 듣던 목소리에서 더 성숙해지고 남자다워진 그런 목소리가.
그 사람은 나무를 돌아 사보에게 다가왔고 바람은 언제부터 불었는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사람이 사보의 앞에 도착하고 사보 역시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주위의 모든 게 멈췄고 그토록 그리고, 바라던 네가 서 있었다.

“..너는...”
“.....안녕.”

겨우 쥐어짜내 한마디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너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지금의 네 시간에서 떠도는 소문은 원하는 사람을 보여주는 거니까. 아마 너는 이 열매가 그 열맨지도 모르고 먹은 것 같지만.

“무슨...내가 꿈을 꾸나?”
“...하하, 그건 아닐걸. 먹었잖아, 열매?”

나는 벅차 오르는 감정과 나조차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걸 다시금 가슴 안으로 깊숙이 넣어두고 평정심을 유지한 채 에이스를 바라봤다.

“그 열매가 환각을 불어 일으키는 열맨가...?”
“...소문 안 들어봤어? 이름 없는 섬의 특이한 나무에서 1년에 한 번, 딱 한 개 나오는 열매는...”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잘 아네.”

사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면서도 눈은 계속해서 에이스를 담고 있었다. 한 순간도 놓치기 싫었다. 네가 살아 숨쉬는 모습을 내 눈 안에 가득 담아두고 싶었기에.

“반갑다, 에이스.”
“......사보.”

에이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울 듯 일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사보를 안을 듯 팔을 크게 벌렸지만 이내 뒷걸음질 쳤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싶어 에이스의 얼굴을 살펴보니 에이스의 두 눈은 혼란스러움과 걱정에 잔뜩 흔들리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사보를 껴안고 싶은 충동을 누르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아아, 너는 내가 사라질까 봐 그렇게 겁을 내는 거구나.
사보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에이스를 향해 다가가 두 팔 가득히 에이스를 끌어안았다. 어릴 적 숲 속 냄새와 함께 섞여 풍기던 네 냄새가 이제는 바다냄새와 어우러져 코 끝을 찔렀다.

“허상이래도, 상상이래도, 그저 미련일 뿐이래도, 그래도말야, 에이스. 만질 수 있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놓치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 안 들어?”

사보의 말에 에이스의 몸이 약간 풀어졌다. 사보는 에이스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봤다. 지금이 현실인지 꿈인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저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면 좋았다. 사보는 고개를 약간 틀어 바다 냄새와 함께 에이스의 냄새를 더 들이마시기 위해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항상 하고 싶던 말을. 에이스를 만나면 처음으로 하고 싶던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많이...많이 보고 싶었어.”

눈 앞에 보이는 목을 덮고 있는 검은 에이스의 머리칼과 에이스의 목덜미가 한 순간 흐릿해졌다. 에이스는 사보의 말에 울음기를 가득 띈 목소리로 사보의 이름을 불렀다., 그에 답하자 사보가 정말 있냐는 듯 계속해서 사보의 이름을 부르다 고맙다는 말을 하곤 목소리가 이내 끊어졌다. 무슨 느낌인지 알겠다는 듯 사보는 잔잔한 미소를 띄고 에이스의 등을 부드럽게 쓸었다. 어릴 적 그가 울어야 할 상황에도 울지 않겠다고 새빨개진 눈으로 고집을 피울 때 종종 해주던 그 방법 그대로. 그러자 그제야 에이스의 팔이 사보를 강하게 끌어안았고 사보 역시 토닥이는 걸 멈추곤 에이스를 끌어안았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서 있었다.



**
한참을 에이스의 얘기를 듣다 갑자기 에이스가 사보에게 가까이 다가오며 사보의 흉터를 쓸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에이스는 자신이 어릴 적에 죽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그 사고에서 이 흉터만 입고 살아나서 이 흉터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약간 대답을 얼버무리자 에이스는 맘에 안 든다는 듯 급기야 사보의 흉터를 지워버리려는 듯 얼굴을 한 손으로 잡고 흉터를 문질러댔다. 그 마음이 너무나 따듯해서 사보는 눈이 부시다는 듯 눈을 한쪽 느리게 감았다 뜨고는 에이스의 손을 잡아 내렸다. 자신의 상처든 이야기든 다 필요 없고 그저 에이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에이스의 목소리를 좀 더 듣고 싶었고 에이스를 더 바라보고 싶었다.
사보는 네 이야기를 해 보라며 에이스의 팔에 그려진 자신의 해적기를 가리켰다. 에이스는 순식간에 귀를 붉게 물들이고는 보지 못하게 막았지만 이내 사보가 문신을 만질 수 있게 가만히 내버려두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는 나를 이렇게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나와 함께 여행했던 거구나.
사보는 에이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에이스의 몸에 새겨진 자신의 해적기를 만지며 또 다시 밀려오는 슬픔을 겨우 우겨 넣었다.



루피 이야기까지 마친 에이스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사보는 곧 표정을 딱딱하게 굳힌 에이스에 긴장을 해 절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이제 네가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차례야”
“뭐....?”

심장이 발 끝까지 내려간 기분이었다. 쿵 하고 떨어진 심장은 쉽사리 올라오지 못했고 비어버린 자리엔 불안감이 사보를 잔뜩 휘감았다. 에이스는 그저 자신이 환각을 보고 있다고 믿고있는건데 어째서 마지막 이라는 단어를 말한 걸까. 설령 이게 환각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다고 해도 왜 마지막인 걸까. 어째서?
사보가 표정을 굳히고 있자 에이스는 뭘 그리 인상이 구기냐며 사보의 등을 팡팡 쳤다. 그리고 말을 정리하는 듯 잠시 말이 없어진 틈을 타 사보는 먼저 선수를 쳐 에이스의 얼굴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네가 죽는 건 알고 있다. 네가 지금 내 시간에는 없다는 건 매우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살아있는 네 입에서 나오는 마지막이란 소리는 정말 듣기 싫었기에.

“그런 이상한 소리 하지마. 내 부탁 더 들어줘”

남은 짧은 시간이라도 네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사보는 나름대로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원했지만 에이스는 네 부탁을 들어줬는데 왜 또 들어줘야 하냐며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고 사보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에이스와 의미 없는 말 싸움을 한참 하다 결국 지쳐 잔디 위에 누워 어느새 점점 밝아져 오는 하늘을 바라봤다.

“.....들어줘, 내 부탁”
“....대단해, 넌... 어릴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흰수염 해적단 2번대 대장이라고!”
“.......좋네”
“뭐?”
“자유로워 보여서, 좋아. 우리 약속이었잖아, 안 그래?”

벌떡 일어서서 자랑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며 바다를 바라보던 에이스가 사보의 말에 천천히 뒤돌았다. 그리곤 눈을 끔뻑이며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이를 활짝 보이며 웃었다.

“당연하지, 누구랑 한 약속인데!”
“그렇지?”

에이스의 웃음은 떠오르는 햇살만큼이나 눈부셨다. 사보는 그저 눈이 부셔서, 에이스의 뒤로 떠오르는 햇살이 눈이 부시기 때문에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둘은 다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조금 전만 해도 그저 하늘을 밝게 물들이기만 하던 태양이 어느새 수평선 위로 올라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려왔다는 듯 에이스는 조용히 부탁을 들어달라며 다시 말을 꺼냈다.

“하하....정말 이러기야? 좋아, 내가 졌어. 말해, 들어줄 테니까”
“......날 잊어줄래?”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어느새 에이스는 조금 더 앞으로 가 햇살을 더 가까이서 받으며 사보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에이스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게 더 사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알아, 말도 안 되는 얘기인 거. 내 상상 속의 너한테, 내가 불러낸 너한테 이런 얘기한다는 거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먼저 널 잊어야 한다는 것도”

사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에이스가 지금 무슨 말을 내뱉는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네가 날 잊어줬으면 좋겠어, 내가 아무리 널 그리워해 이렇게 부른대도 나타날 수 없을 만큼 잊어줬으면 좋겠어”

사보는 말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붙잡고 돌려 품 안에 넣고는 내가 널 잊을 수 있겠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넌 다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건데도 나 때문에, 우리 때문에 지금의 네 모습에 묶여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야”
“그런 게....가능할 리가..”
“그래, 가능할 리가 없지. 이건 다 내 상상이고 환각일걸”

네 상상이 아니야. 사보는 속으로 말을 삼키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버젓이 난 살아있는데도 너에게 내가 살아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현실을 원망하며 사보는 멍한 눈으로 에이스를 쫓았다. 에이스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와 사보의 손을 부러질 듯이 꽉 잡았다.

“그냥, 그저 네가 너무 진짜 같아서 그래. 네가 살아있었으면 정말 이렇게 자랐을 것 같아서”

에이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보는 가슴이 꽉 죄여오는 걸 느꼈다. 가슴이 답답해 숨을 쉴 수 없었다. 눈물마저 흘러내리지 못했다. 그저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서. 에이스의 눈물이 연결된 두 사람의 손등에 툭 하고 떨어졌다.

“네가 날 잊어주면 내가 아무리 널 그리워해도 넌 나를 잊었을 테니 마음 놓고 그리워 할 수 있을 테니까. 내 이기심인걸 알아. 알지만....”

사보는 결국 잡고 있는 에이스의 손을 끌어당겨 에이스를 품에 안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그저 입을 열면 어미를 잃은 짐승의 울음소리만이 나올 것 같았다. 어느새 사보의 볼에도 눈물이 길게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지나갔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사보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보 자신이 지금 에이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에이스”
“응”
“다음 번엔 꼭 다시 만나자”
“......”
“다음 번엔 평화로운 세상에서, 누구도 미워할 필요 없이, 그렇게 태어나서 다시 만나자”
“......응”

이내 여전히 공중에서 춤을 추듯 흔들리던 나뭇잎들이 에이스의 몸을 감싸 안더니 곧 바람을 타고 위로 흩어졌다. 에이스 역시, 사보의 품에서 사라졌다.
텅 비어버린 품을 내려다보며 사보는 숨을 죽였다. 가슴에서부터 차오르는 슬픔이 사보의 입을 두드리며 감정을, 울음을 내뱉으라 했지만 사보는 행여 누구라도 들을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내가 너를 잊을 수는 없었다. 나는 평생 너를 잊을 수 없다.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게도 너 역시 나를 잊어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서로를 잊지 못하면 다음 번에는, 다음 생에는 서로를 잊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에이스......미안해.....”

사보는 그제야 에이스에게 계속해서 하고 싶었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침 햇살이 섬 구석구석 환히 비췄다. 하지만 사보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양처럼 빛나던 그가 없었다. 정말로 이제는 사보의 시간에서 에이스란 존재는 과거의 존재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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