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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에이] 전화

·. 2016. 6. 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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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소리마저 삼킨 듯 사방은 고요했다. 이미 자정을 넘어 두 바퀴나 지난 시점, 동료들은 모두 잠들었고 배 안엔 유일하게 나만이 깨어있었다.
부엌에서 따듯한 코코아를 탄 후 방으로 돌아가며 바다를 내다봤다. 달빛을 반사하며 잔잔히 요동치는 바다에서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배에 파도가 부딪혀 철썩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코코아를 다 마신 후에도 잠이 오질 않아 펜을 집어들고는 항해 일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본 시간은 2시 반 이었다. 사각사각하며 펜이 종이를 훑는 소리만이 가득 한 방 안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소음이 뛰어들었다.


푸르르르...푸르르르...


나는 고개를 들어 책상 한 켠에 놓인 전보벌레를 쳐다봤다.  지금 이 시간에 전화가 올 리가 없는데. 나는 전보벌레를 쳐다보며 전화를 받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전화는 끊어질 생각도 않은 채 계속해서 울렸다.  그 옆에 있는 통신 방해 전보벌레를 깨울까 생각했지만 마음을 고쳐잡고 조심히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전보벌레를 보는데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전화를 받으면 눈을 떠야하지 않나? 나는 순간 등을 뒤덮는 한기를 느끼며 전화를 내려놓으려 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입에서 멋대로 말이 튀어나왔다.


“누구세요.”


여전히 수화기 너머에선 대답이 없었다. 나는 한숨 쉬며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눈을 감고 있는 전보벌레의 입이 약간 움직였다는 걸 깨닫고 다시 수화기를 고쳐 잡았다.


“이 시간에 장난전화라니, 할 일 없는 놈이군 너도.”


이제는 화가나 약간 거칠게 말을 쏘아붙였다. 그러자 말소리가 들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매우 익숙한. 매우 그리운 목소리였다.


[거기 있었구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 조차 쉴 수 없었다.
네 목소리는 이랬겠지, 어릴 때와 다르게 더 성숙해지고 굵어진 목소리었겠지, 하며 막연히 생각하고 상상했던 그 목소리가 지금 내 귀로 똑똑히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 있는 줄 알고 얼마나 찾았는데]


이번엔 내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하는 대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숨이 막혔다. 가쁜 숨을 몰아쉬자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내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아챈 듯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보. 네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소매로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너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내가 부른 네 이름에 네가 대답해줬으면 했다.


“에이...에이스...”
[응]
“에이스...보고싶어.”


일순간 전보벌레의 표정이 무너졌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훌쩍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는 걸 포기하곤 그대로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땅으로 떨어지게 내버려뒀다. 밖에서 큰 바람이 불어 내 창문을 거세게 때렸다.


[나는 항상 여기있어. 어디에도 안 가고 여기있으니까]
“에이스....잠시...!”
[그러니까 천천히 와. 얼마가 걸리든지 기다릴게]


찰칵, 하고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네 이름을 연거푸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는 수화기를 붙잡고 오열했다. 여전히 바다는 조용했다. 세상엔 내 울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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