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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에이] 마지막 세상-1

·. 2016. 1. 3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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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두웠다. 곳곳에 불빛이 있는 곳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곧 꺼질 듯 파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콘크리트 돌덩이를 넘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이리저리 널브러진 놈들을 피해 걸음을 내딛고 열심히 다리를 움직여 맨 꼭대기 층에 도착한 후 쌓아둔 자재들 틈으로 지나가 열쇠를 이용해 철문을 열었다. 철문 안으로 들어가 다시 열쇠로 문을 잠근 뒤 옆에 있는 가구들을 이용해 문을 막았다. 이번엔 잠겨지지 않은 문을 넘어 방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사람의 인기척에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누군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을 듣는데 순간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크게 울렸다. 모두 당황하여 비명 지르며 책상 밑으로 들어갔고 나 역시 황급히 책상 밑으로 들어가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더 이상 땅은 울리지 않았고 웅성대는 강의실 앞쪽에서 교수님이 누군가의 연락을 받는 듯 하더니 그대로 수업은 끝이라며 나가버렸다. 모두가 어리둥절해 있다 어찌됐든 수업은 끝이라는 생각에 다시 금세 활기를 띄며 조잘대며 하나 둘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갑자기 비어버린 두 시간의 시간동안 뭘 해야 할지 몰라 친구 놈들에게 연락을 넣어봤지만 답이 없어 그냥 자취방으로 돌아가 한숨 자기로 결정했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나른해지는 몸에 가방은 옆에 던져버리고 아침에 개어놓지 않은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몸에 이불을 칭칭 감은 채 나는 금세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

.....쾅

..........쾅!!!!

 

나는 가까이서 들려오는 소리에 화들짝 눈을 떴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보자 이미 6시가 넘어간 시각. 다음 강의는 끝난 지 오래였다. 분명 알람을 맞춰뒀는데.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제대로 앉고는 방안의 불을 켰다. 늘어지게 하품하며 손가락을 놀려 티비를 켜는 순간 잠결에 들린 폭발음이 바로 건물 밑쪽에서 들려왔다. 황급히 거실에 나 있는 조그만 창을 열어 밑을 바라보자.

 

“....이게 뭐야 시발...”

 

나도 모르게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미처 상황파악을 하기 전 켜진 티비에서 긴급대피라는 글자가 크게 나타났다.

나는 황급히 창문을 닫고 문 쪽으로 달려 나가 문이 제대로 잠겨 있는지 살폈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손에 땀이 나 몇 번이나 문고리를 놓쳤다. 그리고 휴대폰으로 부모님께 연락하며 멍하니 티비를 쳐다봤다.

 

[오늘 오후 1시 24분경 중국 홍콩 쪽에 떨어진 운석에 미확인 바이러스가 들어있었고 그것이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확산되었다고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공기 중으로 전염되며 이미 인구의 50%이상이 감염되었다고....판결났습니다.]

 

뚜뚜뚜-

 

전화기에선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생명력 하나 느껴지지 않는 여성의 목소리가 엄마의 목소리 대신 들려왔다.

거짓말. 꿈을 꾸는 건가 아직도.

내 머리 속엔 이런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소식에 나는 그저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

“다녀왔어?”

“응, 자. 골목길 끝에 편의점은 다행히 무사하더라.”

“....입 맛 없어.”

“그래도 먹어둬.”

 

나는 봉지를 건네곤 건물 안을 햇빛이 비추려는 걸 눈살 찌푸리며 바라봤다. 그리고 일어나 옆의 담요로 꼼꼼히 창을 가렸다.

 

“사보.”

“응?”

“이러지 말자....”

 

나는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기회라는 듯 소년은 음식이 들어있는 봉지도 내팽개치고 내 다리를 붙잡고 흐느꼈다.

 

“이러는 거 아니야. 제발...나 너무 힘들어...”

“아냐. 아니야.”

“하지만 나한테 말했다고.....! 혹시라도 내가...”

“루피.”

 

나는 내 바지를 꽉 움켜진 루피의 손을 내쳤다. 그리고 천천히 시야를 낮춰 어둠속에서도 알아볼 정도로 눈물범벅인 루피를 쳐다봤다.

 

“다시는.”

“.....”

“그런소리하지마.”

 

방안에는 가래가 들끓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

나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기 위해 잠을 청했다. 머리가 아파질 만큼 자고 난 후 눈을 뜨자 사방이 고요했다.

난 그럼 그렇지, 생각하며 다시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가로등 불빛과 앞부분이 찌그러져 헤드라이트가 꺼지지 않은 불빛들 사이로 그것들이 죽은 듯이 널브러져 있어 나는 다시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티비를 틀자 여전히 빨간색의 큰 글씨로 긴급대피가 적혀져있었고 각각의 지역마다 대피장소가 적혀져있었다.

 

“하...하하.....”

 

나는 맥없이 웃다 곧 울음을 터트렸다. 아빠도 엄마도 친구들도 다 죽었겠지. 도저히 사람이라곤 볼 수 없는 저것들처럼 변해서 죽었겠지. 왜 나는 살아있는거야.

나는 한참을 울다 정신 차리고 티비를 뉴스채널에 고정시키곤 노트북을 열었다. 인터넷에 들어가니 지역별로 살아남은 자들의 신상정보를 올리는 란이 있었고 난 우선 내 이름을 등록시킨 뒤 부모님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도 뜨지 않는 이름에 나는 그저 인터넷을 모르니까,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올려둔 밖의 그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나갔다.

 

[지금 잠시 밖에 나갔다왔는데 아무런 반응 없음. 밤에는 활동 못하는 듯.]

[낮에 친구가 갑자기 피 토하며 눈이 뒤집혔어. 미친 속도로 날 죽여려.....아니 잡아먹으려기에 가방으로 내리치고 뛰어서 도망쳤어. 나 지금 배터리도 없는데 누가 나 좀 구해줘.]

[저거 좀비 아니냐고.]

[몰래카메라지? 누가 몰래카메라라고 말해 줘.]

[중국 쪽 아예 전멸 중이라고 함. 아마 우리나라도 곧...]

[살고 싶어. 살려줘.]

 

나는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며 노트북을 닫았다. 머리 두통이 심해 천천히 일어나 부엌에서 물을 마시다 순간 드는 생각에 급히 입을 뗐다.

이게.....이게 실제 상황이면 대피소로 가지 않는 이상 난 고립된 거나 다름없는 거잖아? 대피소에도 과연 음식이 충분히 있을 것인가?

나는 곧바로 찬장을 열어 내게 남은 음식들을 체크했다. 다행히 어제 장을 봐둬 음식은 꽤나 있었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도중 나에 대해 이질감이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울던 내가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루피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루피는 저항하며 나를 뿌리치곤 문 앞을 막아둔 가구들을 거칠게 옆으로 치워낸 후 잠겨진 문을 열려했다. 나는 가까스로 그런 루피의 손에서 열쇠를 빼앗았고 문 앞에서 루피는 주저앉았다. 문 너머의 아래쪽에서 고통에 가득찬 신음소리가 울렸다.

 

“...루피.”

“.....”

“너 많이 지친것 같아. 한숨도 못 잤지? 우선 다시 들어가자.”

“.....”

 

나는 미동도 없는 루피를 안아들고는 다시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조심히 눕힌 후 담요를 끌어 덮어준 후 토닥거리자 금세 잠든 루피를 보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질러진 방을 치우고 문 앞에 가구들을 쌓아 다시 막은 뒤 다른 방에 들어가 의자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앞을 쳐다봤다. 건물 곳곳을 비추고 있는 씨씨티비의 화면이 눈 안에 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피 범벅이 돼 돌아다니는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눈을 돌리고 나지막이 말했다.

 

“에이스....”

 

절망만이 가득 찬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벌써 이주일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내가 알아낸 건 밖에 있는 괴물 같은, 그래 흔히들 말하는 좀비 같은 사람들은 낮에만 활동하지 밤에는 활동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또한 역시나 식욕이 어마무시한건지 눈에 보이는 고열량의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닥치는 대로 다 먹어치운다는 것도. 해가 지고 난 후엔 마치 방전되듯이 점점 돌아다니는 속도가 줄어들더니 그대로 쓰러져선 일어나지 못했다.

지구상의 생물들 중 몇 명이 저렇게 변한 걸까. 50%이상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본 뉴스에선 면역을 가진 자가 단 10%로도 안 될 수 있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왔었다.

 

“내가 그 10%라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아....?”

 

손에 든 쇠파이프를 꽉 쥐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혼자 말이라도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미 엉망이 된 도시에 전기같은게 제대로 운영이 될 리도 없었고 인터넷도, 티비도 끊긴지 3일이나 지났다. 점점 더 절망스러운 상황에 나는 조심스레 발을 옮겨 근처 마트에 들어섰다.

 

“이건...썩었고...이건...괜찮겠다.”

 

마트 곳곳에 쓰러져있는 놈들을 피해 먹을 수 있는 걸 가방 안에 잔뜩 챙겨 넣었다. 어차피 내가 면역자라면 밤마다 나와도 상관은 없지만 정신적인 소모가 너무 컸기 때문에 최대한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을 줄였다.

한참 마트를 둘러보고는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2시 반이 되어있길래 다시 발을 집으로 향해 돌아갔다. 자취방으로 올라가기 전, 창틀에 묶어둔 노란 색 티셔츠를 멍 하니 바라봤다. 정부에선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면 창틀에 노란색으로 무언갈 달아 표시해달라며, 곧 구하러가겠다곤 했지만 이렇게 여전히 난 혼자 있다.

 

“5시 까진 좀 남았으니까...”

 

나는 가방을 열어 식량을 정리 한 뒤 조금 배를 채운 후 다른 데서 구해 온 라디오의 주파수를 이리저리 돌렸다. 여전히 지직 거리는 소리에 한숨 쉬고는 일어나 문을 점검하고 창틀에 티셔츠가 여전히 잘 매어있는지 본 후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시 밤이 오기 전까지 내가 깰 일은 없을 것이다. 끔찍한 소리를 더는 듣기 싫었다.

 

 

 

 

 

**

깜빡 졸았던 건지 뻐근한 목의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손을 올려 이리저리 뭉친 근육을 만지고 있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초에 잠에서 깬 것도 이것 때문이었을 것.

 

“루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안쪽 방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굳게 닫힌 방문 앞에서 울고 있는 루피가 보였다. 놀래지 않게 다가가 등을 토닥거려주자 눈에 띄게 흠칫거리긴 했지만 딱히 손을 내치진 않아 한참동안 그렇게 루피의 등을 토닥거려줬다.

 

루피가 울음을 그친 것은 한참 후였다. 조금은 진정이 됐는지 얘기 좀 하자는 말에 우리는 장소를 옮겼다. 그래봤자 겨우 방 한 칸이었지만.

 

“사보. 이제 결정을 내려야해. 그치? 여기 근처 먹을게 다 떨어진 게 맞잖아.”

“....”

“보내주자, 편히 보내주자.”

“.......”

“사보.”

“우린 비감염자야. 너도, 나도, 에이스도.”

“...아냐 사보. 아니라고...!!”

“아냐. 맞아. 그건 공기 중으로 오염되는 건데 우린 멀쩡하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내가 버럭 소리치자 루피는 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체념한 듯 뒤돌아 음식박스를 뒤적거리더니 조용히 말했다.

 

“...먹을 게 다 떨어졌어. 오늘은 내가 나갈게. 사보는 좀 쉬어.”

 

알았다고 대답하기도 전에 루피는 다른 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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