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 /로우에이

[로우에이] 고백과 고백

·. 2016. 1. 22. 13:54

 

에.....정확히는 로우에이←사보 입니다!!

근데 정작 로우에이는 별로 안나옵니다.......ㅎ....

 

 

 

 

-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는 아주 추운 날이었다. 칼바람을 맞아가며 학교를 확인해본답시고 나온 자신을 질책하며 서 있는 사보 곁으로 훤칠한 키의 두 사람이 지나갔다.

 

“아, 존나 춥네. 진짜.”

“그러게 따듯하게 입고 나오랬지 않나.”

“귀찮다고.”

“네가 그렇지 뭐.”

“뭐 임마?!?!!”

 

바람소리를 뚫고 너무나 선명히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사보는 발 하나 꼼짝하지 못했다. 너무도 그리웠던 이 목소리를 막상 직접 듣게 되니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보내버릴 수밖에 없었다.

 

“...!! 잠...!!”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바람소리에 파묻혀 사라졌을 때가 되어서야 사보는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뒤돌았지만 이미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사보는 바보 같은 자신을 질책하며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

“...이상으로 입학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사보는 느릿느릿 강당을 빠져나갔다. 1학년 5반. 그게 사보가 1년 동안 지낼 반이었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는 얼굴이 여럿 보여 인사하곤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는데 어떤 목소리가 사보의 귀를 낚아챘다.

 

“꺼져.”

“쫌팽이 새끼.”

“닥쳐.”

 

고개를 황급히 돌리자 검은 머리칼에 다크써클이 꽤 길게 내려온 한 학생이 길게 뻗은 다리를 책상위에 올려두고는 입에서 험한 말을 툭툭 내뱉고 있었다.

 

“너 에이스 놈이랑 같은 반 안돼서 짜증난 거지? 인마, 중학교 3년 동안 같은 반이었음 된 거지.”

“입 닥치라고. 주둥이 뽑아....”

 

우당탕탕

그 학생은 차마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그야 그럴게 사보가 둘의 대화사이로 몸을 날려 큰 소란을 피웠으니.

 

“뭐야...?”

“바..방금 에이스..라고..?”

“.......?”

 

사보가 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앞문을 열고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어쩔 수 없이 사보는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자리에 앉자 친구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사보는 그저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걔하고 얘기를 해봐야겠어.”

 

사보는 쓸쓸히 교문을 나서며 중얼거렸다.

간단한 조례가 끝나고 이것저것 설명을 들은 후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선생님의 말에 사보는 얼른 아까 그 학생을 쫓으려고 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붙잡는 통에 그러질 못했다. 내일은 꼭! 이라고 생각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골목의 모퉁이 너머로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사보는 다시 몸을 멈췄다. 저번처럼 멀어지는 소리가 아닌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꽤 가까워진 목소리에 사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제 저 모퉁이를 돌아 네가 나오겠지.

 

“그렇게 따지면 내가 더 억울하거든?”

“웃기네, 꼬맹이가.”

“너랑 얼마 차이도 안 나거든? 야, 좀만 더 있어봐라. 내가 너를 뛰어넘...”

 

앞에서 시끄럽게 수다 떨며 걸어오던 두 명의 소년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웬 남학생이 눈물을 소리 없이 뚝뚝 흘리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 밑에 주근깨가 콩콩 박혀있는 소년이 옆의 소년에게 흘깃 눈길하자 그 소년 역시 모르겠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했지만 곧 무언갈 깨달은 듯 아, 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너, 오늘 교실에서....”

“에이스!!!!!!!!!!!!!!!!!!!!!!!”

 

사보는 그대로 뛰어가 에이스라 불린 소년에게 안겼다. 에이스는 달려오는 사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사보와 함께 넘어졌지만 사보는 넘어진 것에 개의치 않는 듯 에이스를 끌어안고 펑펑 울어재꼈다.

 

“뭐...뭐야...?”

“에이스으으으.....에이스....흐어어엉”

“뭔......우선은 둘 다 일어나지 그래.”

“아는 사이냐, 로우?”

“오늘 네 이름에 이상하게 반응한 같은 반 학생. 그뿐이다.”

 

에이스는 우선 자신의 몸을 끊어져라 안고 우는 사보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서툰 손으로 등을 토닥여주며 겨우 누운 자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전히 일어나지는 못했지만.

 

“에이스...내가 미안해...내가 너무..흑...흐윽....흐어어엉....!!!!”

“아니, 도대체 뭐가 미안하단거야. 남자가 눈물 보이는 거 아냐!!! 그쳐 임마!!!!!”

 

에이스의 말에 사보는 딸꾹, 하며 울음을 삼켰다. 그러자 그제야 에이스가 웃으며 사보의 눈물을 닦아냈다. 겨울바람에 차가워진 그의 손에 사보가 약간 움찔거리자 에이스는 아, 미안 차가웠나? 하며 사과했다.

 

“자, 마셔라. 너네 둘 다. 그리고 부탁이니 제발 일어나지 그래.”

 

로우는 어느새 근처 편의점을 다녀 온 것인지 따듯한 캔 커피를 들고 있었고 사보와 에이스에게 각각 내밀며 말했다. 에이스는 사보를 겨우 어르고 달래 일어나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에이스를 꽉 안고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듯 고집피우는 사보에 결국 로우는 둘을 끌고 자신이 자취하는 방으로 향했다.

 

“우리 집 가도 괜찮은데.”

“너희 부모님께서 웬 남자애가 너 붙잡고 꺼이꺼이 우는 거 보면 참 웃으면서 받아들이겠다.”

“부모님..? 에이스, 부모님 살아계셔..?”

 

난데없는 사보의 말에 옷을 갈아입던 로우도 사보의 등을 토닥이던 에이스도 일순 행동을 멈췄다.

 

“우와...너 나 싫어하는 거냐.....부모님이 돌아가셨길 원하는 거....? 그런 거야....??”

“아...아냐 아냐!! 전생에선 네 부모님 둘 다 돌아가셨으니까...살아계시면 진짜 다행이다. 다행이야!!!”

 

사보는 당황하며 에이스를 끌어안고는 고개를 저었고 에이스는 답답하다며 그런 사보의 등을 퍽퍽 쳐냈다.

 

“잠깐, 전생이라니. 뭔 말도 안 되는....”

“아, 내가 말 안했구나. 나 전생을 기억하거든.”

“......으에에에엑?!!!”

 

다시금 로우와 에이스의 행동이 멈췄다. 곧 에이스는 농담하지 말라곤 했지만 하지만 기억하는 걸! 너와 같이 있었던 때도, 혁명군에서의 나날도, 네가..죽던..죽던....흐어어엉 에이스으!!! 하며 또다시 에이스를 붙잡고 울어버리는 사보에 로우와 에이스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 포기한 듯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사보의 말은 이랬다. 전생에 자신과 에이스는 아주 친밀한 관계였지만 사고로 자신이 기억을 잃고 10년간 그와 연락하지 못했고 그는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있었다가 20살에 생을 마감했다. 자신은 그가 죽은 후에야 기억을 되찾았고 그를 기억하지 못해, 그를 지키지 못해 아주 괴로워했다는 것이 그 말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너와 만난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

“........”

“엄청....”

“비현실적이군.”

 

에이스는 하하 웃으며 자신의 말을 이어받은, 아까부터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로우의 등을 쳤다. 사보가 풀이 죽어 있자 에이스는 사보 옆으로 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뭐, 어찌됐든 간에 네가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다니깐 감동이네. 같은 학년이니까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대신 나 보고 울지는 마.”

“...응...!!”

 

바보같이 헤실 거리는 둘을 보며 로우는 고개를 저었다.

 

 

 

 

 

**

“에이스!! 몇 반이냐!!!”

“3반!!”

“으악, 뭐야. 한층 멀잖아?!?!!”

“너넨?”

“9반이다.”

“또 같은 반이야? 이야, 대단하네!”

 

대단하긴 뭐가! 라며 사보와 로우가 동시에 소리쳤다. 그리곤 그것이 맘에 안 드는지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에이스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다가와선 둘의 어깨에 각각 팔을 올렸다.

 

“싸우지들 마셔, 전교 1 2등. 나 먹을 거나 사줘.”

“니 배엔 거지가 들었나.”

“아까 먹었잖아.”

“자라나는 새싹은 언제나 배고프단다.”

 

2학년이 되고 이과를 택한 사보와 로우는 같은 반이 되었고 숫자는 머리 아프다며 문과를 택한 에이스는 저절로 다른 반이 되었다. 둘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고 그래서인지 사보와 로우는 서로 원수라도 진 듯 눈만 마주치면 의미 없는 신경전을 펼쳤다. 그건 공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에이스에 대한 것도.

 

 

“야. 트라팔가.”

“뭐.”

“너 에이스 좋아하지.”

“푸웃!!!!”

 

로우는 마시던 음료수를 그대로 뱉었다. 사보는 더럽다는 눈을 하곤 슬슬 로우에게서 떨어졌다. 콜록거리길 한참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던 로우는 눈물이 고여 벌게진 눈으로 사보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런 너야말로.”

“.......”

 

어느새 곧 여름방학이었다. 에이스 놈은 갑자기 체육 쪽으로 나가고 싶다며 방과 후 활동에 여념이 없어 둘이서 집으로 가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나무에 매달려 귀청을 찢어버릴 듯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도, 로우가 마시던 탄산의 거품이 톡톡 터지는 소리도, 차라리 불지 않는데 나을 듯한 끈적한 바람도 둘 사이를 비껴 지나갔다.

 

“그래서, 고백이라도 하게에~? 그 로우가?”

“못할 것도 없지. 걔랑 내가 몇 년인데.”

“친구로써겠지.”

“좋아한 게 6년이다. 우습게 보지말지 그래.”

“헹, 그러면 이쪽은 전생 때부터 좋아했거든?”

 

로우는 사보의 말에 가만히 있더니 곧 씨익 웃으며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사보는 당장이라도 그 손가락을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부득 이를 갈며 입꼬리를 겨우 올려 마주 웃어보였다.

 

 

 

 

 

**

“에이스.”

“어? 왜?”

“그냥 불러봤어.”

“…….싱겁긴.”

 

에이스는 웃으며 사보의 머리칼을 흩트렸다.

2주 후면 수능이었기에 사보는 에이스의 공부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에이스의 집에 와 있는 상태였다. 처음 사보가 에이스에 집에 왔을 땐 매우 당황했었다. 부모가 전생과 똑같다는 것도 놀랐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가 해적 왕이었다는 인식과는 다르게 너무 유쾌하신 분이었기에. 물론 어머니는 매우 아름답고 친절하셨다.

 

“근데, 너 진짜 그 대학 넣을 거야?”

“음, 해볼 수 있는 데까진. 너도 로우도 그 대학이잖아.”

“...떨어져도 난 모른다.”

“그럼 네 바짓가랑이 붙잡아야지 뭐.”

 

에이스는 문제를 풀며 킬킬거렸고 사보는 턱을 괴고 그런 에이스를 쳐다봤다.

 

 

 

 

 

**

“....미친...괴물...놈들.....”

 

에이스는 마지막 말을 내뱉곤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수능이 끝나고 점수는 꽤 잘 나왔지만 결국 성적이 안 돼 좌절하던 에이스는 대회에 나가 따둔 실기 성적으로 특례로 겨우 대학에 합격했고 그의 아버지가 축하주라며 술을 잔뜩 사왔다. 에이스는 곧바로 사보와 로우를 불렀고 부모님의 허락 하에 에이스의 방에 옹기종기 모여 술을 부어라, 마셔라하다 결국 견디지 못한 에이스가 쓰러진 것이었다.

 

“의외군.”

“뭐가?”

“넌 술을 잘할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무시발언 쩐다, 너.”

 

사보는 상기된 얼굴로 로우를 가리켰고 로우는 피식 웃다가 손을 뻗어 에이스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졌다.

 

“나, 이놈한테 졸업식 날 고백할 예정인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데.”

 

로우는 에이스를 만지던 손을 떼고 사보를 바라봤다. 어떻게 할지는 네가 정하는 거겠지, 말을 마저 내뱉은 로우는 에이스에게 이불을 덮어주곤 바닥에 널브러진 과자 부스러기들을 치우곤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 늦었으니 자고 가라는 에이스의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바로 이 근처가 집이니 집에 가서 자겠다며, 재밌게 놀다간다는 로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방문이 열리더니 에이스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사보는 집이 머니 여기서 자? 라는 말에 사보는 어지러워 이리 튀는 고개를 붙잡고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건네받은 이불을 덮고 에이스의 숨소리를 들으며 사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귓가엔 여전히 아까 로우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

“무슨 일인데?”

 

에이스는 추운지 목도리에 더욱 얼굴을 묻으며 물어왔다. 사보는 고개를 푹 숙이곤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손가락들을 꼼지락 거리다 간신히 입을 뗐다.

 

“내일, 누구랑 놀러가?”

“내일? 졸업식 날? 어...엄마가 가족끼리 외식해야한대서 가족끼리 밥 먹고...아, 로우 녀석 저녁에 잠시 보기로 했는데?”

 

사보는 주머니 속에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 고개를 들어 에이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자신은 너를 좋아한다, 라고 말하려했지만 누군가 말하지 못하게 입이라도 꽉 막고 있는 듯 말을 내뱉지 못했다.

사보 앞에 서 있는 에이스는 사보가 전생에 기억하는 에이스의 얼굴 그대로였다. 눈 밑에 콩콩 찍혀 있는 주근깨도, 웃을 땐 시원하게 올라가는 입 꼬리도, 암흑과 같은 머리칼 역시.

 

“안돼....난 역시...”

 

전생에 너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너를 만나러가기는 커녕 기억조차 하지 못한 내가, 네가 죽어갈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이제와 그 일들을 다 묻어두고 너를 좋아한다고 입에 담을 수 있을까. 여전히 그날, 널 잃은 가슴의 통증이 욱신거리는데 그걸 모른 체하고 너에게 뻔뻔스레 말할 수 있을까. 너와 지금 이렇게 마주보고 있는 것조차 축복받은 것일 텐데. 너를 그렇게 죽게 내버려둔 내가 너를 소유할 자격이란 게 있을까.

사보는 고개를 다시 떨궜다. 눈물은 소리도 없이 흘러나와 땅에 한 방울 톡, 하며 떨어졌다.

 

“사보? 너 괜찮은 거냐??”

“.......응. 내일 로우랑만 만나지 말고 나랑도 만나자고 쨔사....!!”

 

사보는 얼른 눈물을 삼키곤 에이스에게 장난스레 팔을 걸었다. 에이스는 웃음을 터트리곤 알았다고 답하고 집으로 돌아갔고 사보 역시 걸음을 뒤로 했다.

 

 

 

 

 

**

사보는 에이스네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그 장소가 로우와 에이스가 만나기로 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며 조금 일찍 왔나, 라고 생각하고 큰 나무를 끼고 모퉁이를 도는데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급히 발을 멈췄다.

 

“졸업 축하한다.”

“너도!! 근데 무슨 할 말인데? 곧 사보 오는데.”

“사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하던가?”

“음? 아니, 별 다른 말 안했는데.”

“그런가.”

 

사보는 나무 그림자에 몸을 숨기곤 숨을 얕게 내뱉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농담이 아니니까 한 번에 알아들어라.”

“뭐길래?”

“좋아한다, 에이스.”

“...에?”

“네가 괜찮다면 앞으론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어때.”

“.....에에엑...??!?!!!”

 

에이스의 당황스런 목소리가 들리고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상황이 궁금해진 사보는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내밀었다. 로우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너머엔.

얼굴이 새빨개진 에이스가 서 있었다.

 

“사보도 여기서 만나기로 했지, 너.”

“어..? 어어...응...”

“그럼 내일 보자. 집 앞에서 기다릴게.”

 

로우는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푹 숙이곤 있는 에이스의 얼굴을 끌어당겨 입술에 버드키스를 하곤 유유히 공원 밖을 향해 걸어갔다. 홀로 남은 에이스는 그대로 몸을 굳히곤 부들부들 떨다 곧 주저앉았다. 으아아, 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던 에이스는 곧 무언가 생각난 듯 휴대폰을 뒤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보는 자신의 핸드폰이 손 안에서 얕게 울리는 걸 느꼈다. 잠시 동안 받지 않자 에이스는 고개를 갸웃하며 전화를 끊고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사보는 조용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며, 공원 입구 쪽에서 기다리라는 답장을 보냈다. 에이스는 문자를 확인하곤 일어나 공원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다시 문자를 치기 시작했다.

 

[맞다, 사보. 나 너한테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사보는 휴대폰을 바라보곤 나무에 등을 기댄 채 주르륵 미끄러졌다. 입 안에서 허탈감만 가득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마 로우와 사귀게 되었다고 말하겠지. 그 앞에서 나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어야하지. 축하한다고 얘기해줘야하나 아님 그런 쪽이 취미였냐며 놀려야할까.

확실한 건 울어선 안 된다는 거겠지.

 

“에이스...”

 

울컥하고 가슴 저 밑쪽에서 무언가 올라와 목 부근에서 콱하며 멈췄다. 뱉어낼 수도 없는 고통에 눈물이 먼저 주륵 흘러내렸다.

전생 따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너에게 그저, 말하고 싶었다. 전생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생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이기에. 나라는 존재이기에 외면할 수 없었다.

 

“좋아해...정말 좋아해....”

 

아마 평생 말 할 수 없는 단어를 이빨 사이로 짓누르듯 뱉어냈다. 너에게 이 말을 전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아마 전생을 기억할 수 없는 날까지,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가슴 속에 묻어둔 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