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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는 정말 자그마한 섬에 발을 내디뎠을 때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 직접 보지 않아도 풍겨오는 분위기며 사람들의 표정에서 알 수 있던 것은 모두가 사랑 받고 자라고 모두에게 사랑을 준다는 그 분위기가 너무나 포근해서 마치 소위 말하는 고향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훗날 모든 게 정리된다면 이런 곳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얼굴 절반을 가리고 있던 후드를 벗고는 천천히 마을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오늘 물건이 좋다며 맛을 안보면 손해니 먹어보라는 등 돈도 받지 않고 먹을 것을 손에 쥐어주기 일쑤였고 처음 보는 사람이라며 경계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의 마을에 잘 왔다며 편히 쉬고 가라는 따듯한 말들과 함께 손을 흔들어 줬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화와 따스함에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는 받은 사과를 손 안에서 굴리다 이내 와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문득 눈길이 가는 후미진 골목길을 발견했다. 왠지 당연히 있어야 할 것 같은 노숙자도, 잔뜩 쌓여야 할 쓰레기도 전혀 없는 깨끗하지만 그저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 그저 한번 보고 지나치려는 순간 눈길을 단박에 잡아 끄는 종이 쪼가리에 황급히 몸을 돌렸다. 도대체 왜 여기 붙어있는지 감도 안 잡혔지만 골목길의 햇빛도 닿지 않는 안쪽에는 몇몇 유명한 해적들의 낡은 수배서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그 중 네가 있었다.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잘게 떨리는 손을 들어 사진 속의 너를 쓸었다. 이 사진이 찍혔을 때는 네가 살아있었을 때였겠지. 이 사진이 찍혔을 때 너는 여전히 바다를 누비며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겠지. 작은 종이였지만 그 너머로 너의 숨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에 아찔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다시 길거리로 나와 광장을 가로지를 때 여기저기서 아직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면 우리 집에서 묵어도 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는 표시를 해 보이곤 그대로 마을을 빠져 나와 옆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네가 아직도 살아있었고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평화로운 마을에서 조용히 살 수 있었을까. 해적왕의 아들이라고 차별 받지 않고, 그에 따른 자유라는 것을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면 너는 여전히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평범하게 이 마을에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커 왔으면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었을까.
너무나 당연한 평범이라는 단어가 계속 입 안에서 맴돌다가 흩어졌다. 이미 우리는 평범이란 단어와는 너무 멀리 떨어졌기에. 해적왕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어릴 때부터 자유를 찾아 노력한 것도 모두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에 우리가 이런 평화로운 곳에서 평범하게 자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마을에서 태어난다고 해도 너는 다시 자유를 찾아 바다로 나갈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주머니를 뒤져 아까의 수배서를 소중히 꺼냈다. 여전히 종이 안의 너는 웃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그저 사진으로만 바라봐야 했다.
천천히 걸어 숲의 길도 끊기고 밑은 파도의 물거품이 절벽과 만나 부질없이 사라지는 곳에서 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종이를 들어올려 이내 불꽃을 만들어내 함께 태우기 시작했다. 점점 불꽃에 휩싸여 바스러지는 종이를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불길을 사용하며 튀어나올 것 같은 네 모습에 예전에 멈췄다고 생각한 눈물이 비집고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물로 얼룩진 시야 사이로 이내 종이는 거진 타버리고 재는 바람에 나부껴 바다 위를 향해 날아갔다. 불꽃이 삼키고 있는 끄트머리엔 작게 쓴 보고 싶다라는 단어가 흐려져 보였다가 한 방울 눈물을 흘리자 이내 불꽃에 먹혀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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